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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서천_장항 글의 상세내용

『 스토리서천_장항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작성자, 등록일, 첨부(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스토리서천_장항
작성자 김윤호 등록일 2015-12-30 조회 3272
첨부 jpg 파일명 : 스토리서천_장항.jpg 스토리서천_장항.jpg 바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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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서천 4

아! 장항이여
출생 : 1936년 서천 장항읍 전망산(120m)의 바위산
외모와 특징 : 90m의 장신.. 빨강색과 흰색이 조화된 독특한 외모
직업 : 53년간 연기를 내뿜음 .. 1989년 은퇴
기타 경력 : 서해안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이정표 역할
인천상륙 작전시 중요 지형물의 역할

이제 2016년이면 80세
한 때는 초등학교 교과서 표를 장식했던
한국 근현대 경제사의 스타!

갈대만 무성했던 긴 목(잘록한 지역)에 읍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장항(長項)
일제가 금과 은, 미곡 수탈을 위해
1930년 건설된 장항항
1931년 개통된 장항선 철도
1936년 세워진 장항제련소
이와 함께 수 십여 개의 기관과 시설이 들어서고
광복 이후 70년대까지 한국 경제산업의 중심도시!

지금도 장항 곳곳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
장항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변신한 옛 미곡창고
조선총독부 곡물검사소로 활용되던 건물
소박한 어촌마을이 되어버린 장항항
이젠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이 된 장항역
서천군미디어문화센터로 탈바꿈한 중앙극장
8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장항 지역 최초의 교회, 장항교회
근대시절 옛집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황금정마을
제련소에서 나온 슬래그벽돌로 지어진 빨간벽돌은 이제는 담장으로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항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직적인 공간
장항제련소 굴뚝은 그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주인공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이면
현재의 모습은 노쇠한 산업역군
장항 환경오염의 상징적 존재로 치부되고
보존이냐, 개발이냐, 철거냐 끊이지 않는 논란
마치 애물단지처럼 쓸쓸한 노년의 굴욕

하지만 누군가는 그를 추억한다
"나는 장항제련소 굴뚝에서
늘 영원감(永遠感)을 체험했다.
장항제련소의 굴뚝과
그 긴 연기야 말로
내 운명의 서장(序章)"
(고은 시인의 회고담 중에서)

"산 위에 올라가면 장항제련소 굴뚝의
연기가 하늘에 나래 편 커단 새 같이만 보였었지"
나태주 시인의 '막동리를 향해서'

누군가는 그를 기록한다
'아버지는 그 무렵 서천 죽산리에서 염전을 일구고 있었다.
맞은편으론 군산항이, 왼쪽으로는 장항제련소의 드높은 굴뚝이
빤히 건너다뵈는 곳이었다'
(박범신의 소설 '소금' 중에서)
누군가는 그를 기억한다
"그 때는 장항제련소 다닌다고 하면 서로 딸을 주려고 했지요"
(장항 주민의 회고)
돌이켜 보면
장항은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애환과 시름이 녹아 있는 곳
우리가 간직해야 할 것은
그 역사와 시대에 대한 성찰
그리고 우리가 가꾸어야 할 것은
그 역사를 재조명하고 보다 의미 있는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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